아가의 여행의 발견 - 남도 여행 2
<진주 비빔밥>
언젠가 들어본것 같다.
전주가 아닌, 진주에도 비빔밥이 유명하다고.
남도 해양 관광 열차가 지나가는 진주.
요즘 한창인 유등 축제도 볼 겸
내려서 시내로 들어가 본다.
임진 왜란 당시 엄청난 왜군의 공격을 받은 진주성.
싸움에 임하는 우리 군사들을 위해
밥에 나물과 '쇠고기 육회'를 넣어 만든
체력 보충 밥 한 그릇이 이 비빔밥의 시초였단다.
(죽기 전에 고기라도 한번 먹이고픈 마음일까. ㅜㅜ)
1927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진주 비빔밥 전문점 '천황 식당'.
아니 왠걸,
이 때 시간이 점심시간을 한참 지난 3시쯤이었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럼 점심 때는 줄이 얼마나 길다는 건가.)
나라고 별 수 있나.
진주에 자주 오기도 힘드니
그 대열에 끼어 볼 밖에.
대부분 블로그 등을 보고 온 젊은이들이다.
100년이 거의 되어가는 일제식 건물 앞에
스마트 폰과 디카로 무장한 이들이 줄을 서 있는게
왠지 기분이 묘하다.
줄이 더디게 줄어드는 이유가 뭔지
살짝 안을 들여다 본다.
일하시는 분들의 연세가 지긋하셔서
인원이 많아도 다들 느리시다.
꽤나 회전율이 높은 비빔밥이란 메뉴임에도
그 안에 들어가면 모든게 느려지는 이유가 있었네.
겨우 안으로 입성.
밖에서 음식 냄새 맡고 한참 서 있었더니
더더더더 배고프다.
앉자마자 시킨다.
비빔밥과 불고기.
여기서 또 기다린다.
밥이 떨어져서 새로 짓는 타이밍이면
영락없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냥 모든 게 옛날 식 그대로라서
오히려 이게 더 정겹다.
(말로만.)
화려한 육회 비빔밥을 생각했다가
여기의 것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색 빛깔의 향연은 커녕
육회도 고추장도 나물도
천연 염색한 옷의 색 같다.
고추장을 살짝 찍어 맛 본다.
깜짝이야.
이럴수가.
고추가루가 장으로 발효된 것이 고추장이라는데,
이건 태양초 고추가루의 맛이 느껴진다.
엣지있는 고추가루의 쨍한 매운맛이
짜지 않고 구수한 장 맛으로 섞이어
세상에 다시 없는 이 집 만의 고추장이 되었다.
밥에 이것만 비벼 먹어도 맛있겠다.
나물은 잘게 썰려
젓가락으로 몇 번 훌훌 저으면 다 비벼진다.
한 입 가득 입에 물고 우물우물 씹어 본다.
나물아, 나물아.
손으로 물기를 얼마나 쪽 짜냈는지
씹을 때 마지막까지 오독오독하다.
모든 간이 은은하고
고추장마저 짜지 않아
격 높은 선비의 성품같은 맛.
같이 나오는 선지국.
고기와 선지가 밀도 높게 잔뜩 들어있고
잘 우려낸 고기 육수가
무, 콩나물 등과 잘 어우러져
시원하면서 깊다.
이것만 팔아도 맛집 되겠다.
뒷마당에는 두둑한 장독들이 가득한데,
모든 장은 80여 년 전 할머니 손 맛 그대로 이어진다.
비빔밥을 만드는 과정 역시
그 때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게 느껴진다.
이 얼마나 고귀한 고집인가.
많이 기다리고 느리고 맛도 밋밋하다고
하나 가득 불평을 담고 나가는
젊은이들의 뒷 모습에 왜 내가 이렇게 서운한건지.
그래도 그 고집이 언제까지나 꺾이지 않길
바라게 되는 곳.
(천황 식당 지킴이 쎌리 안녕,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