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준칼럼1 -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여러분은 어떠신가. 복요리를 좋아하시는가.
복요리의 여러 효능들을 나열할 수 있겠으나 가장 큰 효능은 뭐니뭐니해도 '해독'이다. 이리저리 우리인체내에 쌓인 갖가지 불순물들에 대한 독을 풀어 준다니 본좌와 같은 애주가, 끽연가들에게는 참 매력적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부위의 맛과 식감이 각기 다르고, 조리방법에 따른 감칠맛도 다양하여 미식가들로 하여금 항상 최고 요리중 하나로 대접받는 복요리는 다 좋은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가격이나 그 가격에 걸맞는(?) 품위있고 우아한 인테리어 등으로 대부분의 복집들에선 돈 있고, 여유 있는 이들의 식사나 술자리가 자주 펼쳐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고위 공직자들의 은밀한 식사자리가 마련되기도 하나 보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차려졌던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초원복집에서의 식사자리였을 것이다.
1992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참 이른 아침에 만나셨다들...)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이상 직책은 당시 기준) 등이 모여서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며 맛나게 복요리들을 자셨다는 것이다. 이 식사자리에 참 다양한 얘기들이 오고 간 모양이다. 조용히 지인들끼리 식사한게 뭔 문제냐 싶겠지만 그냥 밥만 먹고 일어서서 나왔다면, 그들이 나눈 대화가 그들끼리만의 대화였다면 뭐이 이 일이 그리도 유명해 졌겠는가. 내용인즉슨 이 곳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가 정주영을 후보로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 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대화들이 이어졌길래 도청씩이나 했을까?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회동에서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대부분 고위공직자인 그들은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김영삼이 대통령이) 안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 지역감정을 건드려 부추겨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들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어마어마한 사건에 연루되었던 해당인사들은 거의 처벌 받지 않고 오히려 뒷날 정권속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도청했던 이들은 그 내용이 대선에 개입을 했든 말았든 그 도청자체가 불법이라며 당시 법이 허하는 범위내에서 주거침입죄가 적용되어 처벌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2기 참모진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앞서 등장했던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의 중심에 있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정부의 2기 비서실장이 되었다. 친박으로만 집중된 인사다. 아버지시절으로부터 이어진 '7인회'의 중앙무대진출이다. 작금의 국정원 대선개입사태에 대한 대통령이 보일 해결방법에 대한 복선이다.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 줄테고 어떤 경우에는 대통령의 입이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대통령의 과외선생이 될 수도 있는 자리가 아닌가.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인사가 될 것이다. 청와대 참모에 대한 인선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이에 대해 처음부터 잘했네, 못했네 혀를 갖다 댈 일은 아닐 것이다. 국정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면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큰 문제 없었다고, 그 인사로 인해 국민들이 정치적, 정책적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졌다고... 누구나 바라는 훌륭한 마무리가 되길 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건 걱정되는 사안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로 떠오르는 각 종 사건이나 각각의 연관 인물들이 나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까라는 의아함이 드는 것이다. 의아함정도가 아니라 우려, 걱정, 근심이 생긴다. 미간이 찌푸려 지고, 입꼬리가 내려가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찌되더라도 대통령이 작금의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을 ‘독’이라 생각하고 복집을 혹은 복요리를 좋아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그 ‘독’을 해독하게끔 하려는 생각이라면 고쳐 먹어야 할 것이다.
사는게 팍팍하다는 국민들이 많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특히, 정치면) 더욱 사는게 재미없어진다는 주변 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필부필녀들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 노력한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행한 이번 인사도 당연히 대통령 스스로의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다. 뒷날,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더라도 말이다. 아시다시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