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만평

[칼럼]책임 있는 자, 앞으로 나오라.

고현준 2014. 8. 15. 16:10

'윤일병이 죽었다.' 말고 무엇을 더 보고 했을까. 상급자가 '왜 죽었냐'라고 물어봤을테고, '"냉동 먹다가 음식이 기도에 걸려 죽었다."고 합니다.'라고 보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보고를 받은 지휘관은 '아, 씨발.. 하필 내가 이 부대에 있을 때...'라고 생각하며 빠른 사후처리를 지시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군대에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 내막이나 그 상황보다는 서류상에 어찌 기록되어야 하는지 그 기록이 나에게 혹은 나의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보고서라는 것에 자연스레 자신이 실수나 누락 등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선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작성됐을 것이고 적당한 개연성이 부여되는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에만 열을 올려 보고서를 만든 뒤 상급부대로 올려 보냈을터이고, 결국은 그 엽기적인 가혹행위 등은 쏘옥 빠진채 '윤일병이 죽었다.'라고만 보고 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 혹은 나의 추측이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군대에서 아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 중의 하나가 '보고'다. 이 보고에 있어 신뢰감이 떨어진다면 그만큼 허접한 군대가 되는 것이다. 지휘관에게 거짓 보고가 올라 간다는 것은 지휘관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러하면 그것이 전투이든, 배식이든, 병사들의 병영생활관리이든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확한 사태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무슨 지휘와 무슨 작전지시가 유효할 수 있겠는가. 이 보고라는 것에는 '선보고 후조치'와 '선조치 후보고'가 있다. 말뜻 그대로다. 보고를 먼저하느냐 조치를 먼저 취하느냐에 대한 선택이다. 상황에 맞게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윤일병 사고를 보면 그것이 선보고이든 후보고이든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 무엇보다 '정확한 보고'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뜻 깊은 것인지를 알게 된다. 


군이라는 특수한 집단에서 '난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므로 사태 파악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없거나 가볍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작금의 군 고위 지휘관, 고위 간부, 심지어 국방부 장관이라는 작자들이 이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군의 장교이거나 장교였던 사람들 아닌가. 그 어떤 조직이나 직종보다 명예를 존중하는 집단이 군이고 군장교 아니던가. 그런 이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모습 심히 유감스럽다. 앞에 나서서 이러한 사태를 일으켜 너무나 송구하고 유족들에게 깊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일터이다. 뜬금없이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 미안하지만 그 날들을 기억해 보라. 그리고 지금의 순간을 기억해 보라. 왜 책임지려는 이는 없고, 빠져 나가려 애쓰고 궁리하는 모습만 보이는가. 왜 그리하여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슬퍼지게 만드는 것인가. 앞으로 나와 정정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다시 윤일병 사건과 같이 참담하고 슬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책임'감 있게 이 일을 처리하는 군수뇌부의 모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