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단식애상
굶으면 죽는다.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고, 진리이다. 인간은 음식물을 통해 각 종 에너지원을 얻고, 그 에너지로서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런 까닭으로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라는 철학적 질문이 꽤 오래전부터 회자되었으리라.
어느날 샤워 뒤 본 거울에서 본 불어난 뱃살과 턱선이 보이지 않아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형태로 인한 충격으로 급작스런 단식을 결심해 본 적이 있다. 며칠 굶고서 체중이 빠지고 적당량 붓기로 사료되는 그 어떤 부피들이 빠져 나가는 희열을 맛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에도 음식물의 자극적인 스멜을 느끼거나 조리되는 과정에서의 소리만 들어도 군침을 한 바가지씩 흘렸던 것도 사실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중의 본능이다. 본능을 억누르면서까지 음식물 섭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능 이상으로 충족시켜야 할 무언가가 있을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단식이라는 단어가 무언가 얻고 싶은 것이 있거나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스무 살이 넘어서였나보다. 신파위주의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할 때 주인공들이 보여준 단식투쟁따위는 일찍이 접했지만 지극히 단편적이라 생각됐고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던가보다. 하지만 누군가의 단식이 뉴스에 등장할 때는 그 단식의 의미가 달라보였다. 몇 몇 정치인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식을 한다는 뉴스를 접했었고, 그 단식관련 뉴스의 대부분 화면은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그 당사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수척해 보였고, 면도를 하지 못해 불규칙하게 솟아 오른 수염들은 그 데코레이션의 백미였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식은 1983년 5월 18일 시작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일 것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정계퇴출을 당한 김영삼은 군사정권의 언론통제로 인해 자신의 가택연금사실이 알려지지 않자 단식을 통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23일간의 단식을 이어가게 되는데, 훗날 14kg이 빠진채 병상 기자회견을 통해 누워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 죽겠다며 단식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단식으로 인해 김영삼은 자신이 바람을 100%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민추협 발족의 단초를 만들었고, 야권내 자신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아시다시피 민추협시절만큼 한국의 야권이 하나의 뜻을 보여준 적도 드물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있는 결과였다 할 수 있다. 그후로도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단식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 야권의 정치인들이 그 주인공이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도 단식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었다.
그 순수성이나 그 절박함이 어느정도인지는 그 단식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하는듯 하다. 누군가의 단식은 바라보기를 ‘아, 정말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그 뜻을 펼치려 할까.’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또 어느 누군가의 단식은 ‘쉐~키, 쇼하고 있네.’라며 그 행위자체를 깔보기도 한다.
<출처 : 경향신문>
무려 4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보며,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격렬한 단식을 이어가게 하는 것일까를 고민해 본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을 날 것 그대로 이해하긴 힘들더라도 저 단식이 무언가 다른 혜택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꾸준히 제기되는 김영오씨의 단식에 대한 목적성이 순수하지 않다는 음해들을 보면서 '가서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두번, 세번 겹쳐 든다. “아니, 당신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몸을 상해가며 이러는 것이요.”, “뭘 바라길래 이러는 것이요.” 물어볼 수 있지 않은가. 물어본 다음 그 의도나 목적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서 후속조치를 취해도 나쁘지 않지 않겠는가. 김영오씨는 대통령과 대화하자 했다. 그리고는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청와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중국관광객들도 맘껏 드나드는 그 거리에서 김영오씨는 길을 막아선 경찰력으로 인해 전진하지 못했다. 다가와 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할망정 대화를 하겠다며 찾아가는 사람을 막는 꼴이라니 이건 아주 기본적인 순서나 예의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동조단식을 이어간다. 그들이 내세우는 마음은 <세월호법 제정으로 인한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단식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처럼 확실한데 그 상대가 나와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 순수성이나 그 절박함이 전달되는데 부족함 없는 단식이라면 그 맞은 편에서 상대가 되어야 할 사람이나 집단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제스쳐가 있어야 맞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여당 입장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대화를 피하고, 그 세월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빠져 나갈 궁리만 할 필요가 있는가. 유가족이 바라는 형태의 법제정이 어렵다고 얘길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그 모습이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문제에서 비껴나가고 빠져나가려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세월호 정국으로 인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생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선 안 된다고 일갈하는 경제부총리의 얼굴이 모든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시급한 일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경제관련 법안마련은 시급하고, 그 차디찬 물 아래 수장되어 버린 그 어린 생명, 그렇게 참담한 죽음을 맞게된 우리국민들이 왜 그리되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시급한 문제가 아닌것인가. 국민의 뜻을 최고로 여기는 정부라 했지 않았던가. 부디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 판단되는 그 시급한 일들이 분명하고 투명하게 잘 처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 또한 쓰게 된다는 점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