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라삐리뽀!! (술)

황순유의 술 이야기 #2. 오늘도 축하해.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9. 12. 19:35

십 수년 만에 끼워보았다.

서른 일곱의 나이에

앙증맞은 꽃송이 두 개가 달린 18K 큐빅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보니

아무리 액세서리에 큰 관심이 없는 나일지라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1999년,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졸업하기 몇 달 전

나란히 사회에 발을 내 딛었었다.

첫 월급을 받고 선물을 받았던 저 반지는... 

자신이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예물반지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사연이 있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2013년,

사랑스런 나의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던 올 봄.

첫째와는 또 다르게 느껴지던

그 가슴벅차오름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도 아니고

취직한 것도 아니고

때 되면 다 나오는 입학통지서 받고 가는

초등학교 입학에 뭘 그리 유난이냐고?

 

세상이 유난스럽게 고마운 사람에게는

남들이 흘려보내는 일상 하나하나가

특별한 일이 되는 법이다.

 

 

      2006년 Chateau Talbot.             

 

이 녀석,

가장 힘든 임신기간을 보내야만 했고

나와는 가장 다른 성향을 가진

나에게는 숙제와도 같은 이 녀석을

축하해 줄 일이 있을 때

기념하고 싶었던 와인이 생각났다.

 

 

쟁여두었던 그 와인은

아이를 핑계로 어른들이 즐기는 데에 쓰였지만

아흔 살의 증조할머니가

여덟 살이 된 증손주에게

비슷한 색깔의 비타민 음료를

따라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 만한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이는 행복해했고

어른들은 축하해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도 우리 집 와인 셀러에는

우리가 결혼했던 2001년,

큰 아이가 태어나던 2003년,

둘째가 태어나던 2006년,

막내가 태어나던 2008년산 와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기념할만한 와인들을 어떻게 마시냐고?

이 세상에 기념할 만한 일들이

아무렴 태어난 해 밖에 없을라고?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기념할 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문득 생각났다.

연애를 시작한 지 10년 된 기념으로 장만했던...

 

            De Eyezaguirre Reserva Especial, 1999                

  

어제를 추억할 만한 일.

오늘을 기념할 만한 일.

내일을 기대할 만한 일.

핑계 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꺼리가 있다는 건....

참말로....

살 맛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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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술 맛 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