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유의 술 이야기 #2. 오늘도 축하해.
십 수년 만에 끼워보았다.
서른 일곱의 나이에
앙증맞은 꽃송이 두 개가 달린 18K 큐빅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보니
아무리 액세서리에 큰 관심이 없는 나일지라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1999년,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졸업하기 몇 달 전
나란히 사회에 발을 내 딛었었다.
첫 월급을 받고 선물을 받았던 저 반지는...
자신이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예물반지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사연이 있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2013년,
사랑스런 나의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던 올 봄.
첫째와는 또 다르게 느껴지던
그 가슴벅차오름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도 아니고
취직한 것도 아니고
때 되면 다 나오는 입학통지서 받고 가는
초등학교 입학에 뭘 그리 유난이냐고?
세상이 유난스럽게 고마운 사람에게는
남들이 흘려보내는 일상 하나하나가
특별한 일이 되는 법이다.
2006년 Chateau Talbot.
이 녀석,
가장 힘든 임신기간을 보내야만 했고
나와는 가장 다른 성향을 가진
나에게는 숙제와도 같은 이 녀석을
축하해 줄 일이 있을 때
기념하고 싶었던 와인이 생각났다.
쟁여두었던 그 와인은
아이를 핑계로 어른들이 즐기는 데에 쓰였지만
아흔 살의 증조할머니가
여덟 살이 된 증손주에게
비슷한 색깔의 비타민 음료를
따라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 만한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이는 행복해했고
어른들은 축하해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도 우리 집 와인 셀러에는
우리가 결혼했던 2001년,
큰 아이가 태어나던 2003년,
둘째가 태어나던 2006년,
막내가 태어나던 2008년산 와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기념할만한 와인들을 어떻게 마시냐고?
이 세상에 기념할 만한 일들이
아무렴 태어난 해 밖에 없을라고?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기념할 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문득 생각났다.
연애를 시작한 지 10년 된 기념으로 장만했던...
어제를 추억할 만한 일.
오늘을 기념할 만한 일.
내일을 기대할 만한 일.
핑계 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꺼리가 있다는 건....
참말로....
살 맛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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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술 맛 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