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새끼 키우다보면

[송이진의 사소한 인터뷰 2] - 베이비 시터와의 대화

 

 

우리 세대만 해도 아이는 엄마 손에서. 그렇지 못하더라도 혈육의 손에서 크는 것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요즘 엄마들은 가정보다 사회의 일꾼이어야 하고, 모여 살던 가족 친지들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인걸...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인 엄마. 그 자리를 대신할 ‘남’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요즘 엄마들의 오복(五福)중의 하나가 이모님(베이비 시터)복이라고 하지 않던가.

난 그녀가 늦둥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아이 입을 먼저 챙기고, 아이를 향한 밝은 얼굴이 친엄마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저런 분이라면 우리 유준이를 맡겨도 될 것 같은데...슬쩍. 말을 걸어본다.
 
“이 일은 언제부터 얼마나 하신거에요?”
“둘째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우연히 옆집 아이를 봐주며 시작했어요. 그 계기로 두 집 아이를 한 번에 본 적도 있고... 11년 동안 열 명의 아이. 우리 애들까지 열 두명을 키웠네요”

 
오... 이쯤 되면 전문가다. 센터에서 교육 받고 자격증을 따는 경우도 있지만 육아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던가?
 
“아이 키우기 정말 힘들지 않나요?”
“왜 옛날부터 너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다 밭 맨다고 했다죠? 그런데 전 애를 보겠어요. 우리 애들도 수월하게 키웠고 이게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첫 일은 힘들었어요. 남의 아이 키우는 것은 다르더라구요. 그런데 이것도 자꾸 하다 보니 육아 노하우가 생기면서 지금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요“
 
“남의 아이라 힘든 점은 어떤거에요?”
“엄마와 육아관의 차이가 날 때 부딪힐 수 있지요. 물론 엄마의 육아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 맞아요. 엄마니까요.
하지만 엄마들은 책에서만 본 이상적인 육아를 요구하거든요. 밥은 꼭 식탁에서 먹여라. 매 끼니를 다르게, 이렇게 저렇게 먹여라. 잠은 또 이렇게 재워라. 그런데 애들이 그렇게 키워지던가요?

 
그렇지. 애들은 절대 생각대로 키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난 엄마 마음도 이해 할 수 있다. 나 역시 아이가 더 먹어도 덜 먹어도, 다른 아이와 같지 않아도 불안하니까.
엄마들은 항상 정보를 지나치게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지만, 초연해지기도 쉽지 않다.
 
“직장맘이면 맘대로 키워도 모를텐데요?”
“에이 요즘은 CCTV랑 육아일지가 있잖아요. 육아일지에는 하루의 일과를 시간별로 적어요.
CCTV도 요즘 카메라가 좋아서 줌으로 당겨도 보고 말소리까지 다 들리더라구요“
 
“기분 나쁘진 않으세요?”
“이해해요. 사람 속을 어찌 알겠어요. 뉴스 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아이가 종일 무얼 하나 보고 싶고, 궁금하기도 하겠죠. 그런데 육아가 자연스럽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애 아빠가 볼 수도 있는데, 파인 옷 입을 땐 속옷이 보이지 않을까, 불편하기도 하구요“

 
엄마들이 하고 싶어도 도의적으로 하지 못했던 부분을 시터 연계 센터에서 먼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엄마들이라고 마냥 환영할 일은 아닐 수 있겠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 적은 없나요?”
“카메라는 단면적인 부분이 보이기에 오해하기 쉬워요. 예를 들어 아이가 이유 없이 떼를 부릴 때, 그럴 땐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나중에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따듯하게 안아주어야 하거든요. 그런 일이 생길 때 마다 미리 상황 설명을 해야 한답니다”
 
“아이가 다쳐도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유~ 그건 진짜 바늘방석이죠. 요즘 엄마들 아이가 살짝만 다쳐도 얼마나 가슴 아파 하는데요. 그래서 아이가 뛰면 내 마음도 뛰어요”
 
“그럼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사탕 같은 건 목에 안 걸리도록 잘게 깨서 입에 넣어주고, 덥고 습한 날의 음식은 내가 먼저 먹어보고, 행동반경이 커지고 호기심 생기는 시기엔 정말 조마조마해요. 위험요소는 모두 치우고, 함부로 못 뛰게 하지요“

 
그래서였나? 확실히 엄마가 키운 아이들이 더 활발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의 사랑 때문인가 했는데, 시터는 자유로운 놀이 환경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다치면서 커가는 것을...
 
“어떤 집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당연히 나를 믿고 인정해주는 곳이죠”

 
메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를 보면 중장년층이 되어 특히 고개를 드는 것이 존경의 욕구이다.
 
“호칭에 따라서도 마음가짐도 달라져요. 나를 아줌마로 불러주면 난 그냥 일하는 아줌마인거고, 이모라 불러주면 그 아이의 이모가 되는 거죠.
사실 우리를 갑과 을의 관계로 생각하고 막무가내인 엄마들도 많아요.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마음이 힘들면 참을 수 없어요.
아이를 향한 좋은 웃음은 결국 좋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나오더라구요“

 
솔직히 막무가내인 시터분들도 많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 등을 더 요구한다며 하소하는 엄마들을 많이 봐왔다.
어느 날 갑자기 주 양육자였던 시터가 떠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이기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되고 만다.
과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 것일까.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30만원을 받았지만 친조카처럼 돌봤었죠. 아이 엄마에게 육아에 대해서도 선배 언니랍시고 가르쳐 주고요. 그런데 사회 분위기 때문인가? 갈수록 사람들이 사무적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요즘엔 사무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에요
정으로 키우는 아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내 아이를 자식처럼 키워주길 원하면서 나는 과연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요즘 좋은 베이비 시터 구하기 힘들어요“
“육아라는게 하루 이틀 사이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에요. 서로 양보하며 맞춰가야죠. 믿음의 시간이 필요한데, 성급히 판단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육아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아이를 좋아하고, 나쁜 사람은 없어요. 돈만 벌 생각이면 못하죠. 다른 일을 하지.
그런데 그 중 좋은 사람을 찾고 싶다면 말이죠. 제 생각엔 인성이나 능력이 좋아도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 편하지 않으면 편한 육아를 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 현재 그 사람이 얼마나 평온하게 살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아. 그렇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것처럼.
 
“지금 하시는 일에 만족하세요?”
“처음엔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대우도 많이 좋아졌고 자부심이 생겼어요. 우리 애들도 엄마가 베이비 시터라고 자신 있게 말해요.
애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 저 부러워하기도 하는데 선뜻 못하더라구요. 아직 사회적인 이미지가 좋은 것은 아닌가보죠?“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월 460만원의 명품 베이비 시터가 등장했단다. 아이의 교육이 가능한 젊은 선생님들이란다. 명품의 기준이란 교육인건가?
 
“젊은 시터, 필리핀 시터는 어때요?”
“애들 키우다 보니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모두 아이에게 자극이 되고 영향을 미치더라구요. 그런데요 제 자식 이뻐하는 사람이 남의 자식도 이뻐해요. 젊은 미혼 여성들이 잘 가르칠 수는 있어도, 자식을 키워 본 할머니들이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이면 환경적인 정서가 우리와 안 맞을 수도 있지 않나요? 비용이나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교육 때문이라면... 글쎄요“
 
“육아 조언 좀 해주세요”
“요즘 엄마들 아이 하나 둘만 낳다보니, 과잉보호하는 편이에요. 엄마가 앞장서지 말고. 못 할 때만 도와주세요. 호들갑 떨지 말고. 아이보다 한 템포 천천히... 지켜보는 정도에서 간섭하기. 아이를 이기는 엄마가 되어야 해요“

 
헉. 완전 찔린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인데. 새겨듣자.
사실 그녀는 말을 아꼈다. 특히 지금 돌보는 아이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양육 가정의 사생활 보호 역시 베이비 시터의 덕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이기에 아주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라고 항상 솔직했을까?
웃는 얼굴과 함께, 행여 우리 아이에게 해를 끼칠까 매의 눈을 숨기고 있었을텐데...
 
시터와 엄마 사이.
우리 제법 잘 어울리기까지. 밀당보다 대화가 필요한 것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